UNIVERSE&우리동네 이야기 22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어처구니 없다’의 진짜 뜻

“어처구니가 없다.”일상에서 황당한 일을 겪을 때, 혹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표현을 쓴다.하지만 막상 “어처구니가 뭐야?”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다.이 관용어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과거 생활문화와 언어가 결합된 말이기 때문이다.‘어처구니’는 실제로 존재했던 물건이다 ‘어처구니’는 원래 '맷돌의 손잡이(축)'를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맷돌은 곡식을 갈기 위해 윗돌과 아랫돌을 맞물려 돌리는 도구인데, 이때 돌을 제대로 돌리기 위해 꼭 필요한 부속이 바로 어처구니였다.어처구니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맷돌은 있지만돌릴 수 없고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즉,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핵심이 빠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그래서 ‘어처구니 없다’는 이런 의미가 되었..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걷는 인문학

1. 북촌은 ‘풍경’이 아니라 ‘도시 구조’다북촌은 흔히 전통 골목의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도시 역사 관점에서 보면 서울(한양)의 중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종묘 축이 만드는 권력의 삼각형 사이에 자리한 북촌은, 조선의 도성 계획 속에서 정치 권력(궁궐·관청)과 엘리트 주거가 맞닿는 지대로 형성됐다. ‘북촌’이라는 명칭 자체가 도성 내부의 북쪽 생활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점은, 이 지역이 단지 ‘예쁜 동네’가 아니라 수도 운영의 중심 생활권이었음을 드러낸다. 더 중요한 건, 북촌이 조선 이후에도 계속 중심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근대 이후 교통·행정·문화의 축이 재편될 때마다, 북촌은 해체되기보다 ‘조정’되며 살아남았다. 이 글의 핵심은 그 조정의 ..

사찰 건축에 담긴 철학; 일주문(一柱門)

가장 단순한 문에 담긴 가장 깊은 의미 사찰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지나게 되는 문이 있다. 화려한 단청도, 위압적인 규모도 아닌,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의 일주문(一柱門)이다. 하지만 이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일주문은 사찰 건축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1. 일주문이란 무엇인가일주문은 말 그대로 ‘하나의 기둥처럼 보이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다. 실제로는 여러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기둥들이 일직선상에 놓여 마치 하나의 기둥이 문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다. 이 독특한 구조는 기능보다 의미를 우선한 불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1️⃣ 일주문의 유래는 있는가? (기원·형성 과정 정리)결론부터 말하면,..

사찰 앞에 남은 두 개의 돌기둥, 당간지주가 말해주는 역사

사찰을 답사하다 보면 절의 규모나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물이 있다. 바로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는 두 개의 돌기둥, 당간지주(幢竿支柱)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이 단순한 석조물은 사라진 사찰과 불교 의식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 글에서는 당간지주가 무엇인지부터, 왜 지금까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지까지 차분히 살펴본다.1. 당간지주란 무엇인가?당간지주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던 깃발을 세우기 위한 장대를 고정하던 석조 지지물이다.용어를 나누어 보면 의미가 명확해진다.당(幢) : 불교 법회나 의식 때 세우던 깃발간(竿) : 깃발을 매다는 긴 장대지주(支柱) : 장대를 받치는 기둥즉, 당간지주는 깃발 장대를 세우기 위해 땅에 고정한 두 개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야단법석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한국에서 만나는 야외 법회의 공간

일상에서 “야단법석이다”라는 표현은 흔히 사용된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란스럽고, 한순간에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우리 역사와 종교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야단법석은 원래 특정한 공간과 풍경을 지칭하던 말이었다.야단법석(野壇法席)의 정확한 의미야단법석은 네 글자의 한자가 결합된 말이다.‘야(野)’는 들판, ‘단(壇)’은 단을 쌓은 자리, ‘법(法)’은 불법(佛法), ‘석(席)’은 모임의 자리를 뜻한다. 이를 직역하면 *‘야외에 마련된 설법의 자리’*가 된다.즉, 야단법석은 처음부터 소란스러움을 의미한 말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부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야외에 법단을 차린 공식적인 종교 의..

겨울의 가장 긴 밤, 왜 우리는 팥죽을 끓였을까?

동짓날 팥죽에 담긴 시간의 이야기겨울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음식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동짓날의 팥죽은 단순한 계절 음식이 아니다. 동지 팥죽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사람들의 두려움과 바람,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 해가 가장 늦게 뜨고 가장 빨리 지는 날이다. 옛사람들에게 이 긴 어둠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불안의 시간이었다. 밤이 길수록 음기가 강해지고, 그 틈을 타 좋지 않은 기운이 스며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지는 늘 조심스럽고 경계해야 할 날이었다. 이 긴 밤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선택된 음식이 바로 팥죽이었다. 팥의 붉은색은 오래전부터 귀신과 재앙을 쫓는 색으로 여겨졌다. 붉은색은 피와 생명을 상징했고, ..

비 오는 날 더 깊어지는 이야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은 거대한 서사나 극적인 반전으로 감정을 흔들지 않는다. 대신 이 작품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빗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말 대신 침묵이 감정을 대신하며, 짧은 만남 속에서 인물의 내면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절제된 감정의 표현과 서정적인 시선에 있다.이야기는 도쿄의 한 공원에서 시작된다. 구두 장인을 꿈꾸는 소년과, 삶의 방향을 잃은 교사가 비 오는 날마다 같은 정원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도, 사연도 쉽게 묻지 않는다. 대신 짧은 대화와 침묵, 그리고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이 관계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맨스의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이라..

2025-2026 철원 한탄강 물윗길 트래킹 완벽정리; 개장기간·요금·코스 총정리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일정한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는 과정이다. 오랜 시간 트래킹을 즐겨온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길이 주는 힘은 계절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겨울철 철원 한탄강 물윗길 트래킹은 걷기의 본질을 가장 또렷하게 느끼게 해주는 길이다. 철원 한탄강은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지역이다. 단순히 경관이 아름답다는 이유가 아니라, 수십만 년에 걸친 화산 활동과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세계지질공원은 철원군만 아니라 포천시와 연천군까지 아우르며, 한탄강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자연유산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물윗길 트래킹은 이 지질 경관을 가장..

[채반] 철원 동송 고기국수 맛집

여행의 여운을 완성해 준 한 그릇의 진심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있다면 단연 ‘맛집’이다. 여행지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식사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날의 기억은 어딘가 아쉽게 남기 마련이다. 특히 가족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맛있는 한 끼는 여행의 만족도를 배로 끌어올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밝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 철원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인 것도 바로 점심 식사였다. 나는 평소 면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국수, 라면, 파스타 가릴 것 없이 웬만한 면 요리는 모두 즐긴다. 그런 나에게 ‘고기국수’는 제주도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음식이었다. 처음엔 고기국수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름지고 느끼한 이미지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철원 · 순천만이 두루미의 천국이 된 이유: 생태 보전의 진짜 힘

두루미는 동아시아 자연 생태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그 자체만으로도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모두 우리나라 겨울철 하늘을 장식하는 대표적 철새이며, 아름다운 깃털과 우아한 걸음뿐 아니라 가족 중심의 사회적 행동, 긴 이동 거리 등으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두루미는 주로 얕은 물이 있는 습지나 하천 주변에서 생활하며, 갈대나 부들처럼 몸을 숨길 수 있는 식생이 풍부한 곳을 좋아한다. 먹이는 주로 습지에 사는 무척추동물이나 작은 물고기, 곡물류 등이며, 계절에 따라 먹이의 종류와 섭취 방식이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자연 습지가 줄어든 영향으로 벼농사 지역으로 이동해 낙곡을 주요 먹이로 섭취한다.두루미의 이동 경로는 세계적인 철새 이동 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