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E&우리동네 이야기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걷는 인문학

은하수카페 2026. 1. 11. 15:10

1. 북촌은 ‘풍경’이 아니라 ‘도시 구조’다

북촌은 흔히 전통 골목의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도시 역사 관점에서 보면 서울(한양)의 중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종묘 축이 만드는 권력의 삼각형 사이에 자리한 북촌은, 조선의 도성 계획 속에서 정치 권력(궁궐·관청)과 엘리트 주거가 맞닿는 지대로 형성됐다. ‘북촌’이라는 명칭 자체가 도성 내부의 북쪽 생활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점은, 이 지역이 단지 ‘예쁜 동네’가 아니라 수도 운영의 중심 생활권이었음을 드러낸다. 더 중요한 건, 북촌이 조선 이후에도 계속 중심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근대 이후 교통·행정·문화의 축이 재편될 때마다, 북촌은 해체되기보다 ‘조정’되며 살아남았다. 이 글의 핵심은 그 조정의 방식 '주거, 정책, 관광, 상업화'을 따라가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탄생과 변화을 알아가는 것이다.

2. 북촌의 한옥문화는 ‘조선의 유산’이면서 ‘근대 도시주택의 실험’이다

북촌 한옥을 조선시대 유산으로만 이해하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서울시 한옥 관련 자료는 북촌 한옥을 전통 한옥과 다른 ‘도시형 한옥’으로 설명한다. 대량 건축이 전제되며 표준화된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밀도와 익명성 같은 도시 주거의 요구를 반영해 하나의 주택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북촌 한옥의 특징으로 ‘진화된 구법’과 ‘장식화 경향’이 언급되는데, 이는 북촌 한옥이 “옛것의 복제”가 아니라 도시 환경에 적응하며 변형된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촌 골목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주거 기술의 기록물이다. 좁은 대지, 경사, 골목 폭, 마당의 축소, 채광과 환기의 확보, 담장과 대문을 통한 사적 영역의 조정은 모두 고밀도 도심에서 ‘한옥이 생존한 방식’으로 읽힌다. 그리고 이 도시형 한옥은 ‘살기 좋은 전통’과 ‘보존해야 할 문화’ 사이의 긴장을 내장한다. 즉 한옥의 가치가 미학으로만 환원될 때, 거주성(난방·위생·소음·주차 등) 문제가 같이 터져 나오기 쉽다는 구조다.

3. 근대·일제강점기: 북촌은 ‘개발’과 ‘방어’가 동시에 일어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도시는 토지 조사와 도로 정비를 통해 토지가 ‘거주 기반’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변하는 시기였고, 북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거지는 분할·매각·신축의 압력을 받았고, 동시에 ‘어떤 주택이 도시의 표준이 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졌다. 이때 북촌의 중요한 특징은, 변화가 단선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가 균열하며 쇠퇴의 압박이 커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인 주거를 지키려는 움직임 속에서 도시형 한옥의 집단 조성이 추진된다.
이 흐름은 1980년대 정책 자료를 통해서도 역으로 확인된다. 북촌의 한옥이 “조선시대부터 고정된 유산”이라기보다, 근현대의 건축·개발·규제 속에서 구성된 경관이라는 인식은 북촌 경관 논의가 특히 일제강점기와 2000년대 이후에 주목해 왔다는 진술로도 이어진다. 즉 북촌은 식민지기의 도시화 충격 속에서 전통이 보존된 것이 아니라, 전통이 ‘재구성’된 공간이었다.

4. “조선의 건축왕” 정세권: 북촌을 만든 것은 보존이 아니라 ‘주거 공급의 전략’이었다

정세권을 단순히 “한옥을 지킨 인물”로 설명하면, 북촌의 현대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1920~30년대에 건양사를 통해 주택 개발을 벌였고, 1940년 이후에는 총독부가 일식 주택 건축을 압박했음에도 이를 거부하며 사업을 접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거부’ 자체보다 그 이전의 ‘공급’이다. 정세권의 한옥 사업은 전통을 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옥을 ‘도시 주거 상품’으로 생산해 조선인 거주 기반을 유지하려는 전략에 가까웠다. 그래서 정세권이 만든 도시형 한옥은 미학적 순도보다 효율(표준화 목재 활용 등)과 도심 주거 조건을 전면에 두는 성격을 띤다.
또 다른 자료에서는 정세권이 익선동에 119채, 북촌에 1,233채 수준의 한옥을 공급했다는 수치가 소개되기도 한다. (해당 수치는 전시·소개 성격의 자료에서 널리 인용되지만, 연구 보고서/공식 통계와의 교차 검증이 필요한 ‘참조 수치’로 보는 게 안전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정세권의 사업이 북촌의 ‘한옥 밀집’이라는 결과를 만들었고, 그 밀집이 오늘날 북촌의 경관·관광·정책 이슈를 모두 낳았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도시의 주거 유형을 바꾸면, 한 세기의 도시 풍경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북촌은 증명한다.

5. 해방 이후~2000년대: 북촌은 ‘규제 → 반발 → 재설계’의 과정으로 오늘에 왔다

북촌은 보존 정책의 실험장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도 제한이 적용되고(10m), 1980년대 초 ‘한옥보존지구’ 지정으로 증·개축 제한이 강하게 걸렸으며, 1983년에는 ‘한옥보존지구 겸 제4종 미관지구’ 지정이 이루어진다. 이 자료에는 당시 북촌의 규모와 한옥 비중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전체 2,750여 가구 가운데 한옥이 1,518가구”로 파악됐다는 대목은, 북촌이 “몇 채 남은 전통”이 아니라 이미 대단위 주거 집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강한 보존은 곧 재산권·거주성 논쟁을 불렀고, 1991년 전면 해제라는 큰 전환도 발생한다. 이 과정은 한옥 보존을 ‘문화재 보호’로만 접근할 경우, 실제 주민의 삶(수리 비용, 내부 개조 필요, 생활 편의)이 정책의 마찰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2001년 이후 ‘북촌마을가꾸기’는 전통성과 현대성, 공공성과 개인 재산권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북촌이 오늘날 “관리되는 관광지이자 생활 공간”이 된 배경에는, 이런 정책의 굴곡이 누적되어 있다.

6. 오버투어리즘과 생활권 문제: 북촌은 ‘관광지’가 되면서 다시 도시 문제의 중심이 됐다

최근 북촌은 과밀 방문으로 인한 소음·쓰레기·불법주정차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고, 서울시는 관광 허용시간 도입 등 주민 피해 완화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2024년 보도에서는 북촌한옥마을 일대가 112만8000㎡ 규모의 특별관리지역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오버투어리즘이 추상적 불편이 아니라는 점은 ‘소음’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 정책 제안 자료는 북촌 주요 골목 소음이 평균 59dB, 최고 70~80dB까지 나타났다고 적는다. 이 수치는 골목이 좁고 민가가 밀착된 북촌의 구조를 고려하면 체감 스트레스가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북촌 문제는 “관광객이 많다”가 아니라, 주거지의 공간 물성이 ‘관광 흐름’을 버티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는 도시 구조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북촌은 다시 서울의 중심이 된다. 서울은 한때 북촌을 ‘전통을 지키는 공간’으로만 다뤘지만, 이제는 생활권 관리(시간·동선·행태), 공공 질서, 지역경제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복합 문제가 되었다.

7. 익선동: 정세권의 한옥이 ‘문화자산’에서 ‘상업자산’으로 바뀌는 경로

익선동은 정세권이 조성한 한옥 주거지의 맥락 위에서 최근 상업화가 급격히 진행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연구 차원에서도 익선동 한옥거리의 변화가 젠트리피케이션 과정과 맞물린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히 “카페가 많아졌다”가 아니라, 임대료 상승과 업종 재편, 지역 정체성 약화, 기존 주민·임차인의 비자발적 이주 같은 연쇄 효과를 포함한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어 왔다.
북촌·익선동의 공통 과제는 ‘보존’이 성립하는 조건이 무엇인가이다. 한옥은 유지관리 비용이 높고 공간 규격이 현대 상업·주거 요구와 충돌하기 쉽다. 그 틈을 메우는 방식이 관광 수익일 때, 공간은 빠르게 상품화되고 거주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거주 기능을 강화하면, 관광 압력과 상업 요구를 조정해야 한다. 익선동은 이 균형이 깨질 때 무엇이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북촌이 같은 경로를 밟지 않으려면, “전통을 지킨다”는 선언이 아니라 거주 지속성(임대·수리·생활 규범)과 방문 관리(시간·동선·가이드·소음 규칙)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