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을 답사하다 보면 절의 규모나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물이 있다. 바로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는 두 개의 돌기둥, 당간지주(幢竿支柱)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이 단순한 석조물은 사라진 사찰과 불교 의식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 글에서는 당간지주가 무엇인지부터, 왜 지금까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지까지 차분히 살펴본다.
1. 당간지주란 무엇인가?
당간지주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던 깃발을 세우기 위한 장대를 고정하던 석조 지지물이다.
용어를 나누어 보면 의미가 명확해진다.
- 당(幢) : 불교 법회나 의식 때 세우던 깃발
- 간(竿) : 깃발을 매다는 긴 장대
- 지주(支柱) : 장대를 받치는 기둥
즉, 당간지주는 깃발 장대를 세우기 위해 땅에 고정한 두 개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보통 한 쌍으로 제작되며, 중앙에 장대를 끼우기 위한 홈이나 구멍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2. 당간지주의 유래와 형태적 특징
당간지주는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자리 잡았던 삼국시대 후반부터 고려시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대규모 법회나 국가 의식이 열릴 때, 사찰 앞마당에는 커다란 불교 깃발이 세워졌고, 이 깃발을 안정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당간지주가 사용되었다.
형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대부분 화강암으로 제작
- 좌우가 완전히 대칭을 이루는 쌍주 형식
- 상단에 장대를 끼우는 홈이 존재
- 장식이 거의 없는 절제된 조형미
이러한 단순함은 불교 건축 특유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화려함보다는 기능성과 상징성이 강조된 구조다.

3. 당간지주가 문화유산으로 중요한 이유
당간지주는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라, 사찰의 위상과 당시 사회의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실물 증거다.
첫째, 불교 의례의 흔적이다.
문헌으로만 남은 법회가 실제로 열렸던 공간을 증명해 준다.
둘째, 사찰 규모의 지표다.
당간지주가 크고 정교할수록 국가 또는 지역 중심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역사 복원의 단서다.
절은 사라졌어도 당간지주가 남아 있으면, 그 자리에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당간지주는 현재 국가지정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4.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유명한 사찰 사례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철제 당간이 남아 있는 곳으로, 고려 초기 불교 의식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보은 법주사 당간지주
현존하는 대사찰의 당간지주로, 의례 공간과 사찰 배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 부여 정림사지 당간지주
백제 사찰 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로, 탑과 함께 고대 사찰 구성을 보여준다. -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절은 사라졌지만 당간지주만 남아 옛 사찰의 존재를 증명한다.
5. 왜 절은 없어지고 당간지주만 남았을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재료의 차이다.
목조건물로 지어진 전각은 화재와 전쟁에 취약했지만, 석조 유물인 당간지주는 비교적 잘 남았다.
둘째, 조선시대 억불 정책이다.
사찰이 철폐되거나 축소되는 과정에서 건물은 사라졌지만, 기초 석조물은 제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셋째, 재사용 가치의 부재다.
당간지주는 실용적 전용이 어려워 파괴되지 않고 원형이 유지되었다.
이에 따 오늘날 우리는 당간지주를 통해 사라진 사찰의 위치와 위상을 추적할 수 있다.
마무리
당간지주는 말없이 서 있지만, 수백 년 전 불교 의식과 사람들의 신앙, 그리고 사찰의 역사를 묵묵히 전해주는 유산이다. 절제된 형태 속에 담긴 정보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 다음에 사찰이나 폐사지에서 두 개의 돌기둥을 마주친다면,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의 표식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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