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보면 시대의 권력이 보인다
근대의 화폐는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니었다.
'누가 세금을 걷고, 어떤 금속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고, 어떤 문양을 ‘국가의 얼굴’로 찍어내는가'
이 모든 것이 주권이었다. 대한제국이 화폐제도를 정비하려 애쓴 이유도, 일제강점기 조선은행권이 유통의 중심이 된 이유도, 광복 이후 ‘한국은행권’이 다시 국가의 표준이 된 이유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돈은 누구의 나라에서 통용되는가?”
이 글은 대한제국(특히 1890년대~1910년)과 일제강점기(1910~1945)를 깊게 다루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근대 화폐까지 연결해 화폐제도의 변화·화폐 종류·디자인의 의미·경제적 파장을 한 번에 정리한다.
1. 대한제국의 화폐개혁: ‘근대 국가’의 조건을 돈으로 만들다
1-1. 혼재의 시대: 외국 은화와 국내 보조화가 뒤섞인 시장
개항 이후 한반도 교역이 늘면서, 실제 유통은 종종 “조선의 제도”보다 “현장의 돈”이 먼저였다. 국내에서는 전통 동전 유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항장 중심으로 외국 은화(무역결제용)가 함께 쓰이는 혼재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근대적 화폐제도를 세우려면, 단위·본위·주조체계·은행권 발행 질서가 함께 정리되어야 했다.
1-2. 1890년대 은화 주조 시도: ‘량(兩)’ 체계와 크라운 규격의 수용
1892년 인천전환국에서 제조된 '오냥은화(五兩銀貨)'는 세계 무역결제용 ‘크라운화’ 규격을 채택한 은화로 설명된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이 은화의 규격·순도 표기(“900”)와 무게 표기(“416 grain”)의 의미까지 함께 안내한다. 또한 초기에 “대조선” 표기가 들어갔다가 외교적 압력 등으로 표기가 바뀐 정황도 표기해, 화폐가 국제관계의 압력을 받는 ‘문서’였음을 보여준다.
포인트: 대한제국의 은화는 “근대식 주화”였지만, 전국적 통용·충분한 발행량·일관된 제도 운영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시장에서 기준이 되기 어려웠다.
1-3. 백동화 남발과 물가 불안: 제도 실패가 남긴 경제의 상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 중 하나는 보조화(특히 백동화) 남발로 인한 폐제 문란과 인플레이션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1890년대~1900년대 초 화폐제도 근대화 시도와 함께, 준비 부족 속에서 보조화 남발이 물가 불안과 유통 혼란을 키웠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즉, “근대식 동전”을 만든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신뢰를 뒷받침할 준비(본위·준비금·유통 관리·발행 통제)'가 함께 있어야 했다.
1-4. 1901년 ‘화폐조례’: 금본위 규정과 ‘환(圜)’의 등장
대한제국은 1901년 법령을 통해 금본위 화폐제도를 규정하고, 단위를 정비하려 했다. 우리역사넷의 「화폐 조례」 해설은 이 법령이 금 2푼의 가치를 1환으로 규정하고, 금화(20환·10환·5환)를 본위화로, 기존 은화·백동화·적동화를 보조화로 두며, 50전=반환(半圜), 100전=1환 등 단위 체계를 정비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포인트: “환(圜)”은 단순 글자가 아니라, 국가가 가치 기준을 선언하는 단위였다.
다만, 금본위의 ‘선언’이 곧바로 금의 충분한 유입과 안정적 주조로 이어지지 못하면, 시장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1-5. 대한제국 금화의 상징성: ‘국가의 얼굴’을 금속에 새기다
대한제국기 금화는 수량·유통에서 한계가 있었더라도 상징성은 매우 컸다. 대표적으로 1907년 20원 금화 이미지(용 문양, “二十圓” 등)는 오늘날에도 대한제국 근대화의 상징물처럼 회자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희귀한 수집품”이라는 사실보다, 주권의 표상(문양·문자·단위)을 스스로 설계해 찍어내려 했던 의지다. 국가가 자기를 ‘누구’로 규정하는지—그 선언이 금속 위에 응축돼 있다.
2. 국권 피탈 이후: ‘한국은행권’에서 ‘조선은행권’으로, 발행 주체가 바뀌다
2-1. (구)한국은행권: 이름은 남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소장품 설명에 따르면, 대한제국이 「한국은행 조례」를 공포해 한국은행을 설립했으나, 국권침탈 이후(1910년) 1원·5원·10원권 등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이 지폐는 제일은행권의 화폐단위 표기를 바꾸고 은행 명칭·휘장 등을 바꾼 디자인이라는 점이 소개된다.
핵심: 같은 “은행권”이라도, 발행 주체의 정치적 위치가 바뀌면 그 화폐는 곧 통치의 도구가 된다.
2-2. 조선은행권의 체계: 총독부 허가 아래 발행, 전시경제로 ‘남발’의 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일제시대와 광복이후’ 설명은, (구)한국은행이 1911년 조선은행으로 다시 출범했고, 「조선 은행법」 아래에서 은행권 발행이 가능하되 양식·종류는 조선총독의 허가가 필요했다고 서술한다. 또한 1914년 100원권, 1915년 1원·5원·10원권이 제조·발행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전비 조달을 위해 발행이 늘어 수탈이 심화되었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포인트: “통용”은 경제기술이지만, “발행권”은 권력이다.
일제강점기 화폐는 경제를 움직이는 동시에, 경제를 통제·수탈·동원하기 위한 인프라로 기능했다.
3. 광복 이후 대한민국 근대 화폐: 다시 ‘국가의 표준’을 세우는 과정
광복 이후 화폐질서는 곧바로 안정되지 않았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 “어떤 돈을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가 국가 운영의 핵심 과제가 된다. 한국은행의 ‘최초의 한국은행권’ 해설은 한국전쟁 시기 급박한 사정 속에서 은행권을 긴급 제조·수송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 정지 및 교환 조치 등이 이어졌다는 맥락을 전한다.
이 구간은 “디자인 변화”보다 “제도의 확립”이 더 중요했다. 발행권·유통 통제·교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화폐가 국가의 혈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시대별 화폐 비교표: 단위·발행주체·본위·목적이 어떻게 달라졌나
| 구 분 | 대한제국(1897~1910) | 일제강점기(1910~1945) | 대한민국 근대 (광복 이후~전쟁기 포함) |
| 핵심 목표 |
근대 국가로서 통일 화폐제도 확립 | 식민 통치 하 유통·금융 통제 | 국가 재건을 위한 표준 화폐 확립 |
| 주요 단위 |
‘냥/전’ 혼재 → ‘환(圜)’ 체계 정비 시도 (화폐조례) |
‘원(圓)’ 계열 은행권 중심 (조선은행권) |
한국은행권 중심으로 재정비 (교환·유통정책) |
| 대표 화폐 |
오냥은화(1892) 등 근대식 은화 주조 / 20원 금화(상징) | 1915년 1원·5원·10원권 등 | 전시·혼란기 교환 조치와 한국은행권 발행 |
| 제도적 리스크 |
보조화 남발·준비 부족 → 신뢰 흔들림 | 전시경제 동원, 발행 증가·수탈 심화 | 물가·유통 안정, 위폐/불법발행 대응 필요 |
| 디자인 메시지 |
황실/국가 상징(문양·표기)로 주권 표상 | 발행 질서가 총독부 통제 아래 | “국가 표준” 복원과 제도 신뢰 회복 |
4-1. 오냥은화(1892) : 무역결제 규격을 수용한 근대 은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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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년에 발행한 오냥은화 (출처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4-2. 대한제국 20원 금화(1907) : '국가의 단위'를 금속위에 각인한 주권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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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대한제국 시대 20원 금화(출처 : 위키미디어) |
4-3. (구)한국은행권 1원권(1910) : '은행권'은 남고, 시대의 주권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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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구)한국은행 1원권 앞면/뒷면( (출처 : 한국은행) | |
4-4. 조선은행권(1915) : 조선총독부 허가 체계 속에서 유통 표준이 된 식민지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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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년 발행 조선은행권(일원, 오원, 십원권) (출처 : 한국은행) |
5. 결론: “근대 화폐”는 경제사가 아니라, 주권의 문장이다
대한제국의 화폐는 완벽한 성공담이 아니다. 제도는 흔들렸고, 보조화 남발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금본위 규정도 현실의 준비 부족 앞에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의 의미는 분명하다. 근대 국가가 되기 위해 ‘가치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려 했던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이 국권 피탈 이후 식민지 금융체계로 흡수되면서 발행권이 권력의 핵심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광복 이후 한국은행권의 정비 과정 역시, 단순히 새 지폐를 만든 일이 아니라 국가 표준을 다시 세우는 행정·금융의 복원이었다.
그래서 근대 화폐를 읽는다는 건, 옛돈의 가격을 세는 일이 아니라 시대가 남긴 ‘주권의 문장’을 해독하는 일이다. 동전의 문양, 지폐의 단위, 발행기관의 이름—그 모든 것은 “누가 나라의 시간을 쥐고 있었는가”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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